『범동경』에서는 사견의 종류를 62종이나 소개합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전유경(箭喩經)』이나 『청정경』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범동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하겠습니다.

 『범동경』을 설하신 인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이 마가다국에서 교화하시느라 돌아다니시는데, 수피야라는 브라만 수행자와 브라흐마닷다라고 하는 그의 제자가 계속 부처님을 따라다니면서, 수피야는 갖가지 욕설로 부처님을 비난하고, 브라흐마닷다는 온갖 좋은 말로 부처님을 칭찬했습니다. 아마 두 사람이 짜고서 부처님을 비꼬면서 따라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들의 비난과 칭찬에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스승과 제자는 각기 다른 마음을 품고 서로 위배가 되나니, 익힌 것이 다르고 견해가 다르고 친근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도 대꾸하지 말고 내버려 두도록 했습니다. 제자들은 부처님의 이 같은 너그러운 마음에 감복하여 그날 빌어온 음식으로 식사를 마치고 강당에 모여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부처님을 칭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안 부처님이 비구들이 모여 있는 강당에 오시어 법을 설한 것이『범동경』입니다.

부처님은 강당에 모여 있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만약 여래와 법과 교단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너희는 분한 마음을 품어 그들을 해치려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스스로 그 비난에 빠져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부처와 법과 교단을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너희들은 기뻐하거나 다행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너희들이 환희심을 일으키면 곧 그 들뜬 마음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기뻐해서는 안 된다.

위의를 갖추고 계행(戒行)을 바르게 하는 것은 하찮은 일이다. 배운 것이 적은 범부들은 진리의 깊은 의미를 통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여실해 보이면 찬탄한다. 그래서 그들은 "사문 고오타마는 살생을 하지 않고, 폭력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일체중생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긴다.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은 신자들의 보시를 받아 넘치게 쌓아놓고도 의복이나 음식에 만족을 모른다. 하지만 사문 고오타마는 이런 일이 없다"라고 칭찬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 여래를 칭찬 하는것은 하찮은 일을 칭찬하는 것이다.

 여래에게는 그밖에도 심심미묘한 큰 진리의 광명이 있나니 오직 현성(賢聖)한 제자만이 능히 이 법으로 여래를 찬탄할 수 있나니라. 어떤 것이 심심미묘한 대광명법인가? 여러 사문과 바라문은 과거세에 대해서 과거에 대한 견해와 미래세에 대해서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갖가지로 무수하게 제 마음대로 이야기 하는데. 모두가 62견 가운데 들어가서 한결같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62가지 사견(邪見)을 종류별로 분류하여 소개한 후에 부처님은, 이 같은 사견이 무엇에 근거해서 성립된 주장이고 어떤 논리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으며 그들의 논리가 어떤 편견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 뿐만 아니라, 심심미묘한 대광명법으로써 이들 사견을 벗어난 현성한 제자들은 진실하고 평등하게 여래를 찬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경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계율을 잘 지킨다거나 욕심이 없다는 점에서 부처님을 칭찬하는 것은 하찮은 일에 지나지 않으나, 부처님은 바로 사견의 원인과 사견이 의지하고 있는 논리와 사견이 가진 편견을 잘 알아 이를 극복하고 있기에 찬탄 받을 만하다는 점입니다. 부처님의 침묵에 대하여 부처님은 이론가가 아니라 실천가이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는 현대 학자의 주장을『범동경』은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정경』에서는 이들 사견이 촉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여 사견의 원인을 지적했는데,『범동경』에서는 이와 더불어 사견을 주장하는 논리적 근거가 무엇인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모든 철학이나 사상은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려고 합니다. 이들 사견도 나름대로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주장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부처님이 지적하고 있는 이들 사견의 논리적 근거는 현대논리학적인 개념으로 표현하면 경험론적 귀납법(歸納法)과 합리론적 연역법(演繹法), 그리고 변증법(辯證法)입니다. 이 같은 부처님의 지적을 통해 우리는 부처님이 논리학에도 정통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논리학이 진리를 증명하는 학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논리에 어긋나면 우리는 그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범동경』에서 사견도 모두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진리는 아니라고 비판합니다. 그렇다고 부처님이 자신의 특별한 논리학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어떤 측면에서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주장되는 견해들을 사견이 라고 비판 했을까요?

우리는 여기에서 독일의 철학자 칸트(Kant)를 생각하게 됩니다. 칸트는『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에서 이성의 이율배반(二律背反)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성이란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우리의 정신기능입니다. 우리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서양의 철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칸트는 과연 이성은 항상 모순 없이 생각할 수 있는가를 문제 삼았습니다. 칸트 이전까지는 이성은 당연히 모순 없이 생각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칸트는 이성을 비판적으로 살펴본 결과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이성에 의한 사유가 모순된 두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 이성은 우리가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사유할 때는 항상 모순 없이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지만 경험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사유할 때는 항상 서로 모순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것을 이성의 이율배반이라고 부릅니다. 칸트는 이 같은 이율배반이 일어나는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세계는 유한하다. 세계는 무한하다.
세계는 시작과 끝이 있다. 세계는 시작과 끝이 없다.

이 문제는 부처님이 답변을 거부하신 문제와 꼭 같습니다. 그래서 현대학자들 가운데는 칸트와 부처님은 같은 입장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칸트와 부처님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칸트는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하는 등의 문제가 무의미한 사견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의 이성이 미치지 못하는 문제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문제에대해서 우리는 그 해답을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청정경』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들 문제는 진실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나온 무의미한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주장이 나오게 되는 원인까지 밝혔고, 또 그런 생각을 없애는 방법까지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칸트와 부처님은 결코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논리학이 진리를 증명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방 불교권에 전해지고 있는 중부 니카야 가운데『Canki-sutta』라는 경이 있습니다. 그 경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바라드바자여,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결론을 갖는 다섯 가지 법이 있다. 신념, 기호, 권위 있는 전통, 논리적인 추론, 사변에 의한 독단적인 사상의 승인, 이것이 두 가지 결론을 갖는 다섯 가지 법이다.

바라드바자여,

어떤 지식이 전적으로 믿음이 간다고 해도,

자신의 마음에 든다고 해도,

전통과일치한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잘 추론된 것이라 해도,

자신이 인정하는 사상과 일치한다고 해도,

그것은 진실이 아닐 수 있고, 공허한 것일 수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한편 전혀 믿어지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고, 전통과 일치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추론되지 않는다 해도, 자신이 승인한 사상과 다르다 해도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진리일 수도 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대개는 이 다섯 가지 경우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이렇게 어떤 지식이 단순한 신념에 의지하고 있을 때는 그 신념이 진리일 수도 있지만 그와는 반대되는 지식이 진리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오랜 전통과 권위가 있는『성경』에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성경』에만 의지해서는 신이 존재하는지 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논리적인 추론도 마찬가지라는 것은 이미 칸트가 지적한 바 있습니다만, 알기 쉬운 예를 든다면, 지구가 돈다는 것은 순수한 논리적인 추론에 의해서 알려진 것이 아니라 망원경과 같은 기구로 천체를 관측한 결과 얻어진 결론인 것입니다. 천체를 관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지구가 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진리의 기준이 모두 진리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범동경』에서 사견들이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으나 진실이 되지 못한다고 비판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어떤 것이 진리를 입증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앞에 소개한『Canki-sutta』에서 부처님은 어떤 주장이 진리인가 아닌가를 입증하려면, 우선 주장하는 사람이 탐진치(貪瞋癡)가 없어서 진실한 사람인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실 된 사람이 진실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게 신뢰가 생기면, 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본 후에, 다시 말해서 논리적으로 합당한가를 잘 살펴본 후에 타당하다고 생각되면 일단 승인을 하고, 그 사람이 그 같은 결론에 도달한 방법에 따라 자신도 열심히 매진하여 그 사람과 동일한 신념에 도달하게 되면, 그때서야 그것이 진리임을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아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에 따라 수행하여 이를 실천할 때 진리의 성취가 있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논리적인 추론이나 신념을 전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진리를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자기 스스로 실천을 통해 검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주장입니다. 실천을 통해 스스로 검증하는 것, 이것을 불교에서는 수행을 통한 깨달음이라고 부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진리는 실천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지 논리적이나 관념적으로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여러 경전을 통해 부처님이 침묵하신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무기의 문제를 다룬 것은 이 문제가 불교를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 문입니다.

 불교사상을 중도사상이라고 말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는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중도는 극단적인 양변을 떠나 중간에 서 있는 입장이라고 이해됩니다.

 그러나 중도는 중간입장이 아닙니다. 세상은 영원한가 무상한가하는 두 주장의 중간입장이 중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도는 이렇게 모순 대립하는 두 주장은 허망한 생각에서 비롯된 사견이므로 그러한 사견을 떠나 있는 입장입니다. 부처님의 무기, 즉 침묵은 이 같은 중도의 입장에서 취해졌으며, 따라서 무기의 의의를 알게 되면 중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찬탄 받는 것은 이렇게 중도의 입장에서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