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동물과 사람

10. 비유이비무

오늘날의 실증주의자들은 엄격하게 실증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것만이 존재한다고 인정될 수 있고, 그리고 그러한 것과 그것에 대한 명칭 내지 언어는 1대1로 대응(동형대응 : isomrphismus)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령 [집]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앞에 있는 저 건물이 동형대응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이 부당하다 함은 곧 뒤에서 지적된다.) 그런데 이런 실증주의자들도 그렇게 동형으로 대응시킬 수 없는 언어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들이 논리어(또는 논리정항)라고 부르는 'and', 'or', 'if ~ than', 'not'의 넷이 그것인데, 이러한 넷은 그것들에 각각 대응하는 일정한 대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히 언어로서의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논리적으로 분별하는 방식에 다음과 같은 5가지가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하나의 사물을 앞에 놓고서, 우선 우리는 그것이 ‘있다’고 긍정한다 (A is). 그리고 이러한 것이 복수일 경우도 있을 수 있고 (A is, and B is), 선택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으며 (A is, or B is), 또는 조건부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If A is, then B is). 그리고 다음에 우리는 이러한 사물이 “있지 않다”고 부정하기도 한다 (A is not). 모든 언어는 이러한 다섯 가지 양상에서 출발하여 복잡하게 구성되어 나간다 (A is, and B is not).

그중에서 가장 뚜렷하고 독자적인 것은 긍정과 부정의 둘 뿐이고, 복수의 선택, 조건 등 나머지 셋은 그 의미가 모호하든가 또는 여기에 첨가하여 세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긍정과 부정의 둘에만 국한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런데 문제는 긍정에서부터 생겨난다. 가령 앞에 있는 접을 보면서 우리는 ‘집이 있다’고 말하지만, 엄격히 따지고 보면 목재 돌 시멘트 등등을 떠나서 집이라고 불리는 ‘그 무엇’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목재와 돌 등이 일정한 방식으로 결합된 것을 집이라고 부르지만, 그러한 결합이 흩어지면 그렇게 불리던 것이 없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집이라고 불리던 것은 사실은 그렇게 불리는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고, 다만 목재나 돌 등이 그러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을 동안만 ‘집 구실’을 하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불교인들이 말하는 연기(緣起)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리하여 ‘집이 있다’라고 말한 우리의 언명은 그것이 그렇게 불리는 것이 실재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성립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 그리고 비단 집의 경우뿐만이 아니라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 무엇인가의 존재를 긍정하는 명제는 그 어느 것이나 궁극적으로는 성립될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다음에는 부정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여기의 부정은 유의 부정을 말하며, ‘집이 있다’에 반대하여 ‘집은 있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의 부정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무가 된다. 그러나 여기의 무는 오직 유의 부정 즉 비유를 말할 뿐이요, 그러한 무에 대한 긍정 즉 ‘무라는 것이 있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여기의 무는 ‘A is not’일 뿐이요, ‘M is’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점을 명백히 하기 위하여, ‘M is not’이라는 의미에서 비무(非無)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가 아니기 때문에 비유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무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아니므로 비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리로 따지고 보면, 비유라고 하나 비무라고 하나 모두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되며, 따라서 비유이비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에 이른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지만, 사물의 실상은 이렇게 부정적으로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다. 동시에 이와 같이 부정하고 또 부정하는 각도에서 사물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탁월한 성능이 된다. 본래 사람의 마음은 자의의 의식과 존재의 의식, 그리고 이것들에 바탕을 둔 갖가지 욕망과 시비분별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반면에 또한 이 마음은 그러한 속박의 테두리 밖으로 뛰어나감으로써 사물의 실상과 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부정하고 또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이러한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비유이비무가 된다. 그리고 이런 국면과 관련하여 금강경은 ‘있는바 모든 상은 허망하나니, 만일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앞에 있는 현실이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볼 때에, 우리에게는 부처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부정을 통함으로써만 부처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데, 이것으로 우리의 마음에 부정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사실 ‘비유이비무’는 사람의 마음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하고도 논리적인 경지에 대한 표현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