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육신으로 나타나면 여기에 하나의 인격이 형성된다. 즉 그 마음은 행위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격이 됨으로써만 마음은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실제로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제 그간의 사정을 자세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의 정신구조를 분석해 보면, 표면에 나와있는 의식보다도 심층속에 파묻혀있는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이 더 결정적으로 인간의 행위를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심층속에는 온갖 정서, 욕정, 경향, 주장, 이해관계 등이 파토스적인 상태에서 포섭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모여서 그 사람의 생명력의 원천이 된다. 동시에 이것들은 인간행위를 결정하는 기본적인 인자도 된다.
그것은 이를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용광로와도 같은 사태에 있는 것이며, 마으미 육신으로 나타날 때에 최초로 생겨나는 상태가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심층속에 포섭되어 있는 수 많은 인자들은 본래는 아무런 규제도 받음이 없이 그 역학적 강도에 따라 제멋대로 밖으로 나타나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것을 충동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는 이러한 충동이 그대로 행위로서 나타나는 일은 -- 갓 태어난 어린애나 정신병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에 그 심층속에는 이러한 충동을 규제하는 중심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러한 중심을 자기 또는 자아라고 부른다.
이리하여 형성되는 자기는 충동을 규제하는 중심이 되어 어떤 충동은 이것이 밖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허용해 주고, 그리고 다른 어떤 충동은 이것을 나타나지 못하도록 억제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자기 중심에 맞는 방향으로 인간행위가 이루어지도록 이끌어 나간다. 사람으로 하여금 타고난 본능적인 행태의 양식을 깨뜨려 버리고 부책적(負責的)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꾸며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기 중심의 규제 작용인 것이다. 마음이 육신으로 나타나고 이리하여 생명이 창조되는 그 원초의 단계에 있었서는 마음이 육신에 의하여 압도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무런 규제도 받음이 없이 각종 인자가 제멋대로 밖으로 나타나려고 하고 있으며 이러한 충동을 규제할 만한 준비가 아직 그 마음에는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때의 그 마음이 자신의 본성을 아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고 다만 그것이 일시적으로 숨겨져 있을 뿐이다. 앞으로 그 마음에 의하여 자기 중심이 만들어지면 그러한 중심을 통하여 그처럼 날뛰던 심층의 충동은 어느 정도 규제를 받게 될 것이다. 이상은 최근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것을 그대로 소개한 것이다. 그런데 이미 신라시대에 우리 나라에 들어와 널리 연구되어 온 유식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우선 심층에 관해 말한다면 수 많은 인자가 그 속에 저장되어 있다는 뜻에서 불교인들은 이것을 장식(藏識) 즉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부르고, 그리고 여기의 인자를 그들은 종자라고 부른다. 수 많은 종자가 아뢰야식 속에 저장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심층속에 충동은 자기 중심에 의하여 규제되지만 그러나 심층과 자기 중심은 서로 별개의 실체인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불즉불리(不卽不離)의 상태에 있다. 심층을 바다라고 한다면 자기 중심은 그 물결과 같으며 그것들이 서로 떨어질 수 없다기 보다는 그것이그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될는지도 모른다.
① 그리고 이러한 자기 중심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아의식이 된다. 동시에 이것은 그 사람이 받는 교육과 문화의 영향을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수시로 달라져 간다. 이와 같이 자아의 의식이라는 뜻에서 불교인들은 이것을 말나식(末那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아뢰야식과 말나식은 모두 무의식의 세계에 잠재해 있는 것이라고 인정된다. 그런 무의식의 세계에 잠재해 있는 것을 <細>라고 부른다. 그런데 어떤 한 사람이 실제로 어떠한 행위로 하는가는 그에게 있어서 심층과 자기 중심과의 사이에서 성립되어 있는 인격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래 파토스적인 흥분상태에 있는 심층이 충동(아뢰야식)과 자기중심(말나식)과의 사이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가 성립되어 있다.
심층의 충동은 무의식 중에 다듬어져서 자기 중심을 이루고 이 중심은 제멋대로 튀어나오려는 종자를 규제하여, 어떤 것은 밖으로 나타나 행위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해 주고, 다른 어떤 것은 억제해 둔다. 이리하여 일정한 행위결정은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이와같이 종자로부터 행위로 나타나는 것을 현행이라고 부르므로, 여기에 유식학에서 유명한 (種子- 生--現行)이라는 하나의 표식이 만들어지게 된다. 여기의 생(生)은 숨어있던 것이 밖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리하여 이루어지는 행위의 성과는 또 다시 새로운 종자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규제의 중심인 자기에 의하여 심층에도 운반되어 여기에 저장된다. 이와 같이 심층 즉 아뢰야식에다가 종자를 운반하여 저장해 두는 과정을 불교인들은 훈습이라고 부르므로 여기에 (現行- 熏- 種子)라는 또 하나의 표식이 만들어 진다. 이리하여 추가해서 저장된 새로운 종자는 심층의 구성에 변경을 가져오게 할 새 자료가 되고, 이와같이 심층의 내용이 달라지자, 그 상태에 맞추어 규제의 중심인 자기의 모습도 그만큼 달라진다. 동시에 이리하여 형성된 새로운 자기 중심은 그것에 맞추어 또 다른 방식의 행위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는 동안에 과거에 이루어진 행위결정의 이적(異積)위에 그것에 특유한 인격이 형성되어 나간다.
이렇게 볼 때에 인간의 행위라는 것은 무의식중에 내부적으로 설정되고 또한 확보된 인격의 구조 여하에 따라 결정적으로 좌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이 육신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격을 통하여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나타내 보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의 작용은 이러한 충동의 규제로써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처럼 규제 작용을 하는 자기 중심까지가 나중에는 그 마음에 의하여 거세되기에 이른다. 자기 중심을 형성하여 심층의 충동을 규제하고 그리고는 그러한 자기 중심마저 거세하는 것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마음은 그 무엇으로부터도 제약을 받지 않는 상태에 되돌아 가려는 그 본래의 작업을 차례로 펼쳐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이 그 끝까지 가면, 나중에는 그 마음이 불심과 같아지게 된다. 이와같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속에 숨겨져 있다는 의미에서 육신에 의지하는 마음의 원초적 상태라고 볼 수 있는 이 심층을 불교인들은 여래장(如來藏)이라고 부른다. ② 여래가 될 수 있는 씨앗이 범부의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