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본래 신통이 자재하여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 우주를 다 감싸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며, 이러한 마음의 앞에서는 불가능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은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일도 해내지를 못 한다. 왜냐하면, 생각만으로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그 무엇인가를 해내기 위하여는,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의 행위주체(行爲主體)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행위자가 되어야만 그 무엇인가를 ‘현실로’ 이룩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어떤 물체에 붙어서 그것에 생명이 있게 하고, 그는 이러한 생명체에 의지함으로써만 비로소 마음은 그 기능을 실제로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음(陰)이 아무리 무한한 창조 능력을 안으로 간직하고 있을지라도, 양(陽)의 기(氣)를 받지 않으면 전혀 그 구실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이 이렇게 행위주체가 되려고 하는 그 본래의 취지는, 이렇게 됨으로써만 비로소 자신의 위대한 창조 능력을 현실로 발휘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리하여 생명체에 의지하게 됨으로써 동시에, 그것은 그 생명체가 받는 각종 제약을 그대로 따라 받게 된다. 생명체가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마음이 자신의 全能함을 확인하기 위하여 육신으로부터 오는 제약을 감수한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모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우주의 깊은 비밀은 바로 거기에 숨어 있는 것이다. 이제 그간의 소식을 좀 더 알아보기로 한다. 마음은 본래 신선(神解)하고 불가능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육신에 의지하게 될 때에, 그것은 그 능력에 있어서 제한을 받는 부자유스럽고 유치한 마음이 된다. 그러면 본래의 그 전능한 마음과 이처럼 제약받는 마음은 서로 어떠한 관계에 있는 것일까. 본래 이러한 두 마음은 그것 자체로서는 조금도 다른 것이 아니다. 전능한 마음이 송두리째(擧體的으로) 변하여 그 능력에 제한을 받는 마음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물이 바람을 타면 물결이 일지만, 그렇다고해서 부동수(不動水)의 물과 동수(動水)의 물이 다른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이때에 만일 이러한 두 마음이 그것 자체로서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다시 말하면, 제한된 마음의 의에 제한됨이 없는 마음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바람이 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에 따라 물결이 일지 않는 부동수(不動水)가 그것 자체로서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①
그리고 이것은 현상 세계의 배후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것의 본질 내지 實體가 어딘가에 있다고 보는 존재론적인 편견에 사로잡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반면에 있어서, 이러한 두 마음은 서로 전적으로 같은 것도 아니다. 하나는 제한을 받고 있고, 다른 또 하나는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육신에 의지함으로써 그 능력에 제한을 받고 있는 마음일지라도, 그것이 마음인 이상, 그 본래의 神解性과 창조 능력을 아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받고 있는 제약이 자신의 본래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을 그 마음은 신면스럽게 알 수 있고, 그리고는 그러한 제약을 뚫고 나가려는 노력을 그것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두 마음이 전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육신에 의지하게 됨으로써 본래의 그 마음이 제한받는 마음으로 되는 동시에, 마음의 특성인 신해성과 창조 능력마저도 그것에 따라 없어진다고 보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두 성능이 없어진다면 그것은 마음이 아니다. 만일 그러한 성능이 없어지는 것을 용납한다면, 다시 말해서, 그렇게 없어지고도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과 기계를 같은 것으로 보려는 ‘인간기계론에 빠지는 것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비록 제약을 받고는 있을지라고 그러한 제약이 없는 상태에로 되돌아가려는 노력이 없어지지 않는 것인데, 그러한 까닭으로 제한된 상태에 있는 마음과 본래의 그 마음을 전적으로 같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이다.②
그러므로 전능한 본래의 그 마음과, 육신에 의지함으로써 그 능력에 제한을 받는 그 마음은 그것 자체로서 다른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들이 또한 모든 면에서 똑 같은 것도 아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이러한 둘을 비일비일(‘非一非異’)하다고 말한다. 같은 것도 아니지만 다른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의 참뜻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육신에 의지하게 되자마자, 마음은 완전히 변질하여 제한받고 부자유스러운 것으로 탈바꿈하며, 이와 같이 제한반도 부자유스러워진 마음이 마음의 전부라고 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알기 힘든 말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서양 중세의 스클라 학파의 사람들이 논의하던 개별화문제 (principium individuationis)도 바로 이에 관한 것이었다.③
둘째로, 육신에 의지하든 아니하든, 언제나 전지전응한 마음이 그것으로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주장 또한 우리이게는 생소한 것이 아니다. 영구히 변하지 않는 實體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서양에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각종 형태로 주장되어 온 형이상학 내지 존재론이 바로 이런 것에 해당한다.
셋째로, 마음 그 자체는 전지전능한 것이지만 그것이 형상으로 나타날 때에는 제약되고 부자유스러운 모습을 띠게 된다고 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사실은 유치한 착상(着想)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속아온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위에서 소개한 어떠한 경해로써도 설명할 수가 없다. 마음은 전지전능하면서도 제한을 받고 있고, 그리고 제약된 상태에 있으면서도 그 신해성과 창조 능력을 잃지 않고 있다. 무제한과 제한이 함께 있고, 신해(神解)와 우매(愚昧)가 둘이 아닌 상태에 있는 것이 이러한 두 마음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두 마음을, 같은 것이 아니지만 또한 다른 것도 아니라고 말했던 것이지만, 그 관계를 참으로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④
그처럼 전지전능한 마음이 어째서 보잘 것 없는 이 육신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神이 진정으로 전능하다면 악마 따위는 없앨 수도 있었을 것인데, 어째서 신은 악마 없이는 자신의 창조 활동을 시작하지를 못하였던가. 그런데 구약(舊約)에 의하면, 신은 악마와의 대결을 위하여 인간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욥기) 인간으로 하여금 신을 대신하여 악마와 싸우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신과 인간을 물론 같은 것이 아니지만, 동시에 어찌셔 그 둘은 본질적으로는 다른 것도 아니라고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그 깊은 까닭은 오직 신만이 그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두 마음의 ‘非一非異’함의 참뜻을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사정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넓은 목장에는 간단한 목축이 세워져 있다.
쉽게 넘을 수 있는 낮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소나 말은 이것을 뛰어넘지 않고, 그 울타리 안에서 그저 풀을 뜯어먹기만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사람이 일으키는 반응은 특이하다. 그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다가, 그것이 장애에 부딪치면,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극복할 수 가 없게 되었다는 판단을 내린다. 자기가 하려던 것에 대한 부정이 의식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동물에게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