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불교공부의 출발점

(1)인간의 몸, 몸의 무상함

불교공부의 동기로서의 무상

불교공부의 동기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서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인간의 몸에 대한 것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은 <능엄경>에서 인간의 육신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부모가 낳아 준 이 몸은 저 시방 허공 속에 한 미진(微塵)을 불어 올리는 것과 같아 있는둥 마는둥 하며 물이 넘실대는 큰 바다에 한 물거품이 떠도는 것 같아 생기고 없어짐을 종잡을 수 없다.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현재 여기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만지면 만져지고, 찌르면 아픈 느낌을 갖는 이 육신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육신을 근거로 해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보통사람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애지중지하게 여기는 인간의 육신은 과연 무엇일까요? 경전에는 저 큰 허공에 보일 듯 말 듯한 먼지와 같다고 했습니다. 먼지 하나가 떠올랐다고 해서 그것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육신은 보이는둥 마는둥 하는 먼지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경전에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큰 바다에 물결이 넘실거리는 가운데 물거품 하나가 떠 있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육신도 그와 같이 하나의 물거품처럼 하찮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출가 동기도 따지고 보면 인간의 육신에 대한 그 동안의 관념을 바꿔 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부처님의 구체적인 출가 동기는 늙고, 병들고, 죽는 것(老病死)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 전에 태자의 몸으로 호화로운 궁전에 묻혀 살았습니다. 성장하여 바깥 세상을 살펴 볼 생각으로 나들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길목에서 늙은 노인을 보게 됩니다. 시중 드는 사람에게 인간은 왜 저런 모습이 되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은 늙으면 모두 저렇게 된다는 대답에 충격을 받습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태자는 자기도 또한 늙음을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한 번도 인간의 불행을 보지 못했던 태자로서는 그것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나들이에서 돌아온 태자는 늙음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천성이 남다른 분이라 늙어서 형편없이 된 인간의 모습을 보고 그 충격이 컸던 것은 당연합니다. 늙음의 문제가 바로 머지 않아 자신의 문제로 대두된다는 사실을 태자로서는 간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늙음의 문제를 생각하는데 있어서 그 방법과 생각은 우리와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어느 날 태자는 또 한 번 나들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길에서 병든 사람을 보게 됩니다. 죽음이 당도하기 직전의 모습, 아픔에 신음하는 처절한 모습을 목격하고 또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몸에 병이 들어 머지 않아 죽게 될 것이고 아무라도 다 그럴 것이라는 대답을 듣게 됩니다. 태자는 그 말을 듣고 또 심한 충격을 받습니다. 인간의 몸을 갖춘 사람으로서 병들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을까 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병들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육신을 가진 이상 누구도 병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병으로 인해 생명을 잃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태자는 즐거운 나들이 길에 그만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또다른 나들이 길에서는 상여를 메고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결국 죽게 되며, 죽으면 시체가 되어 목석과 같은 존재로 변하게 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습니다. 늙음과 병듦으로 인해 급기야는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노병사의 문제는 누구나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무상하다고 하는 것은 불교에 입문하면서부터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입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니 인생무상(人生無常)이니 하는 말은 수도 없이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무상에 대해 태자가 받았던 충격처럼 우리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면 우리의 공부는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삼법인(三法印)을 가장 근본되는 교리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행무상(諸行無常=모든 것은 무상하다), 제법무아(諸法無我=모든 것은 내가 아니다), 열반적정(涅槃寂靜=열반[깨달음]은 고요하다)의 세 가지입니다. 삼법인은 결국 이 세상에 고정불변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으로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무상이란 말과 관련하여 옛날에 해인사의 어느 암자에서 있었던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비구니스님이 사는 그 암자에서는 어린 꼬마들을 데려다 키웠습니다. 본인의 희망에 따라 출가시키기도 하고 학교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절에는 항상 어린 사미니들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어리다 보니 비록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긴 했지만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어린 사미니가 친구들과 함께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관광객이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어떻게 해서 저런 어린 아이가 출가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출가 동기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인생이 무상해서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관광객은 깜짝 놀랐겠지요.

어린 사미니가 인생무상이 무엇인지 알 리가 없었지만 그 말 자체는 불교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불교의 기본적인 정신이나 분위기가 인생무상, 다시 말해서 삶의 무상을 바탕으로 해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출가 동기나  어린 사미니의 대답에서 불교의 신앙과 수행, 그 모든 일이 제행무상, 인생무상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