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들이 밑없는 생사의 구덩이에 빠져 있구나. 나는 장차 어떻게 이들을 속히 건져내서 훌륭한 일체 지혜의 경지에 설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아! 중생들이 온갖 번뇌의 핍박을 받고 있거니 나는 장차 어떻게 이들에게 구호를 베풀어 온갖 선법에 안주케 하겠는가. 아! 중생들이 생로병사를 두려워하고 있거니 나는 장차 어떻게 이들의 귀의처가 되어 주어 그들이 심신의 평안을 길이 얻게 하겠는가. 중생들이 세상의 온갖 공포에 떨고 있거니 나는 장차 어떻게 이들을 도와 일체의 도(道)에 머물 수 있게 하겠는가. 중생들이 지혜의 눈이 없어서 항상 자신을 실제로 있는 듯 믿어 근심에 뒤덮혀 있거니 나는 장차 어떻게 방편을 써서 의심의 소견에, 의심의 그물에 가리운 그 막을 도려내게 하겠는가. 중생들이 항상 허공의 어둠 속에서 갈팡대고 있거니 나는 장차 어떻게 밝은 횃불을 만들어 일치지의 성을 비춰서 그들로 하여금 보게 하겠는가. 중생들이 항상 인색하고, 질투하고, 아첨하고, 기만하는 것에 의해서 더럽혀지고 있거니 나는 장차 어떻게 그들의 지식을 완전하게 하여 청정한 법신을 증득케 하겠는가."

  여기서 보여 주듯이 부처님의 자비는 어느 한 순간도 중생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애민중생여적자(哀愍衆生如赤子)'라고 하여 중생을 막 태어난 갓난 아이와 같이 여긴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갓난 아기는 어느 한순간도 눈길을 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 중생을 어여삐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그와 같은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부처님의 자비를 대신한 관세음보살의 자비 사상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중생의 모든 고통을 다 들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천 개라고 하는 것은 한정된 숫자가 아니라 무한의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결국 부처님의 무한한 자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불교는 자비의 종교며, 자비는 곧 불교를 말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불교와 자비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를 말할 때는 보다 근원적인 의미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계의 평등하심을 관찰하시어 인연 없는 사람에게도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것을 무연자비(無緣慈悲)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가엾이 여겨서 끝내는 중생이라는 생각을 하는 일까지도 없게 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자비는 무연자비에 이르러서 그 극치를 보여줍니다. 무연자비의 내용은 연기(緣起)를 말 할 때의 연(緣)이 아니라 대상과 상대를 분별하는 연관(聯關)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무연자비는 어떤 대상이나 상대의 연관관계를 갖고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닌 무차별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연관관계 없이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연없는 중생은 제도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인연 없는 중생에게까지도 끝내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인 자비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무연의 자비라고 하는 것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작용하는 무조건적인 자비를 뜻합니다.

 자비의 어떤 종류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조건이 없는 무연을 필요로 할 뿐입니다. 우리들 보통사람의 정(情)이나 애착을 가진 유연(有緣)자비가 따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비는 본래 무연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연자비야말로 불교의 자비 사상을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불교의 자비는 우리의 일반 상식을 초월한 자리에 있습니다. 어떤 분별도 있을 수 없으며, 인연없는 모든 사람까지도 놓치지 않는 그런 무한대의 사랑입니다. 또 한 사람도 버리지 않으며 한 치의 증오도 수반될 수 없는 한량없는 사랑입니다. 불교인으로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부처님의 자비 사상을 항상 염두에 두고 실천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