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악이라 해서 벌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어여삐 여기고 감싸주는 것이 불교의 자비입니다. 그것은 마치 물이 바위에 부딪쳤을 때 돌아서지 않고 그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는 끝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 부루나(富樓那)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법을 잘 전달하여 설법제일(說法第一)로 불려집니다. 부루나가 수로나국에 나아가 교화하려 할 때 부처님과 나눈 이야기는 자비의 실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부루나는 부처님께 나아가 여쭈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 수로나국에 가서 부처님의 법을 펴서 그 나라 사람을 교화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루나여, 내가 듣기에 수로나국 사람들은 아주 포악무도하고 예의도 없으며,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것도 없다고 들었노라. 그러한 곳에 가서 교화를 펴고 불법을 전하다가 심한 욕을 듣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 말씀을 듣고 부루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그렇더라도 저는 그들을 나쁘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을 '자비롭고 현명하여 나에게 욕을 하고 꾸짖기만 했지 때리지는 않는구나'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말을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부루나여, 그들은 욕을 하고 꾸짖을 뿐 아니라 심지어 주먹으로 너를 해치기까지 할 것이다. 그럴 때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부루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설사 그들이 주먹으로 저를 해친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악으로 보지 않고, 또 나쁘게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은 참으로 선량하고 현명하여 주먹으로 나를 때릴지언정 무기는 사용하지 않는구나'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루나여, 그들은 주먹으로 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무기로 너를 사정없이 해칠 것이다. 그럴 때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부루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설사 그들이 무기로 저를 해친다고 해도 저는 그들을 악으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은 참으로 현명하고 좋은 사람들이어서 무기로 나를 해칠지언정 목숨을 앗아가지 않는구나'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말씀하시며 교화의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부루나여, 너는 참으로 인욕(忍辱)을 닦은 사람이며, 인간의 좋은 점과 긍정적인 면, 부처로서의 성품만을 보고 사람의 악하고 부정적인 면은 보지 않는 참으로 훌륭한 자비의 실천자로구나. 네가 그 정도라면 수로나국 사람들을 능히 교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볼 때 부루나는 진정한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한 사람입니다. 또 부루나를 통해 부처님의 자비가 어떤 것인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수로나국 사람들이 아무리 포악무도하고, 예의 범절이 없고, 윤리 질서가 무너졌다고 해도 그것을 악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한 부루나는 인간의 내면에는 부처나 될 수 있는 씨앗이 담겨 있다고 하는 인간의 진실 생명을 존중한 인물입니다. 그는 인간의 긍정적인 면을 최대한 높이 평가한 사랑의 실천자였던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좋은 점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의 잘못된 점이나 못난 점을 꼬집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인간의 부정적인 면을 들춰내기에 여념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불법을 믿고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은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인간에게 부정적인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보지 않고 훌륭하고 좋은 긍정적인 면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부처의 성품만을 보는 자세가 불교인의 바람직한 자세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불교의 자비 사상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을 최대한 존중하는 정신이야말로 불교의 자비관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어떤 경우의 어떤 사람이라도 증오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부처님의 품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